[자유 게시판] 뿌리를 찾아서 - 고려 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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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알다시피 29명의 와이프를 두었다. 이는 거느린 호족 수가 29개란 얘기가 된다.
호족을 왕이 결혼까지 해가면서 고려의 신하로 두려고 했다는 것은 왕의 힘만으로는 그들의 복종을 끌러낼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조선시대만 해도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고려라고해서 조선만큼의 힘이 없어서 그렇게 했겠느냔 말이다. 고려는 오히려 군사력면에서는 조선보다는 강했다. 그런 고려의 힘으로도 호족의 충성심을 끌어낼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즉 영토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가 된다.
조선시대의 경우에 임진왜란 때는 단 20일만에 도성이 함락되었고 정묘호란 때는 단 13일만에 평양성에 도달했고 2개월만에 강화가 성립이 되어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고려 시대 때는, 거란의 침입 속도가 가장 빨랐다고 평가받는 2차 여요 전쟁 때 거란은 11월에 출발해서 다음 해 1월이 되어서야 개경에 도착했다.
개경으로 오는데 2달이 걸린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단 20일만에, 병자호란 때는 단 13일만에 한성이 함락당한 조선과는 비교된다.
이것만 봐도 고려와 조선의 영토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따라서 고려의 왕건이 29명의 와이프를 두면서까지 호족을 왕권 하에 두려고 했던 것은 왕권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영토가 넓어 그랬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러면 이들 호족의 위치를 파악 하면 대략적인 고려의 영토가 보인다.
힌트는 왕씨라는 성을 가진 왕을 둔 국가이다.
금나라의 완안은 만주어 발음으로 왕야가 되는데 이를 다시 한자로 바꾸면 왕이 된다.
왕야는 중국에서 주로 제후국에 쓰는 명칭이었다.
한자로는 왕씨, 여진어로는 왕야.... 그리고 금국은 고려와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렇다는 것은 고려의 제후국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완안의 나라는 국호를 금으로 사용했고 시조가 신라 왕자이다.
그런데 왜 김씨가 아니고 왕씨일까?
그것은 신라조차도 나중에 고려에 항복하면서 고려와 정략적인 혼인을 했다는 점을 염두해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식을 낳으면서 그들의 후손들도 자연스레 왕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후손이 만주로 가서 금국을 세웠다면 당연히 왕씨 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금국은 고려의 제후국이었던 셈이다.
금국이 고려의 제후국이라는 데에는 사실 더 결정적인 단서가 있다.
그것은 이름에 있다.
왕건의 중국 이름은 Wangian일 것이다. 그것은 사망일자가 고려의 건국일과 같다는 전촉 왕건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완안의 성은 만주어로 Woongian이다. 중국식으로 하면 Wangian이다.
원래 선비족들은 성을 영웅의 이름에서 따오는 걸로 알려져 있다. 만약 여진족도 이러한 방식을 따랐다면 이들도 역시 영웅인 왕건의 이름을 성으로 따온 셈이 된다.